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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에 나타난 상어들 Sharks in Great Fine Arts

명화 속에 나타난 상어들  Sharks in Great Fine Arts

<저자 주>; 서구의 찬란한 신화 역사나 미술 역사에서 상어를 주제로 했거나 부 주제로 한 예술적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도감 성격의 문헌 제외). 우연히 이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상어가 명화의 소재가 된 것을 처음 발견하였으므로 물고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필자는 반가움을 누렸다.

The_Gulf_Stream918.jpg작품 명 “더 걸프 스트림(The Gulf Stream)”,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작. 여러 번의 습작과 번안을 거친 후의 최종 그림. 죽음을 앞두고 초연한 한 흑인의 정신 세계를 훌륭하게 평가하는 의도가 담긴 그림이다.

The_Gulf_Stream3_734.jpg더 걸프 스트림의 1차 완성 작. 1900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미술 아카데미의 전시회에 출품하였다. 호머는 이 1차 완성작을 되돌려 받은 이듬해에 페인트를 덧칠해서 그림을 어둡게 만들어 최종 작품으로 하였다. 출처/wikipedia

    
“더 걸프 스트림(The Gulf Stream)”이 그려진 배경
미국 사람인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1836–1910)는 1885년 카리브 해 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처음 걸프 스트림(멕시코 만류) 횡단 항해를 한 이후 헤아릴 수 없이 여러 번 이 바다를 건넜다. 그는 첫 카리브 해 방문에서 영감을 얻어 거친 바다와 무서운 상어를 표현하고자 여러 번 습작을 그렸다. 카리브 방문 첫 해에 마스트가 폭풍에 날라간 보트를 드로잉으로 그린 것이 있고 뒤 이어 수채화 습작 “상어들; 또한 버려진 표류물(Sharks; also The Derelict)”을 그렸고 곧 이어 더 크게 “더 걸프 스트림(The Gulfstream)”이란 제목의 습작 수채화를 그렸다.

4년 후 1889년에 역시 같은 제목의 습작 수채화 “The Gulfstream”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는 항해 불능으로 망가진 배에 흑인 선원 한 명을 집어넣었고 상어들이 보트를 에워싸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상어 그림은 이보다 먼저인 1885년에 “상어 잡기(Shark Fishing)”라는 제목으로 그
Winslow_Homer_shark.jpg윈슬로 호머의 1885년 작. 상어 잡기(Shark Fishing). 별도의 설명 없음. Sorce/fineartamerica.com/
린 것이 있는데 1889년 작인 “걸프 스트림”에 상어의 모습을 재활용한 것 같다.

그의 사나운 바다 관련 그림 중에 1899년에 그린 “허리케인 그 후(After the Hurricane)”가 있는데 “The Gulfstream”의 마지막 페인트 작품을 그리기 직전의 습작이다. 파도에 의해 해변으로 던져진 보트 옆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한 흑인을 표현한 그림이다. 10년 전 허리케인과 사투를 벌이던 흑인과 보트의 결과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를 끄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맥케이브의 저주(McCabe’s Curse)”를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맥케이브의 저주”는 바하마의 설화인데 한 시에서 유래된 것이다. 내용은 1814년 영국인 선장 맥케이브에게 고용된 자들이 보트를 훔쳐 타고 근처 섬으로 도망갔는데 도중 허리케인 폭풍을 만나 구사일생 살아났으나 황열(yellow fever;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유행하는 출혈열)에 걸려 나소(Nassau; 현재 바하마의 수도)에서 사망한 이야기이다.

After_the_Hurricane700.jpg호머의 1899년 작. 작품 명; “허리케인 그 후(After the Hurricane)”. 수채화. 38 × 54.3cm. 소장/Art Institute of Chicago. 폭풍 끝에 해변으로 표착한 흑인과 보트. “더 걸프 스트림”의 폭풍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암시하는 그림일 것이라고 하지만 작가 자신은 그런 언급을 한 일이 없다. 흑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Sharks_also_The Derelict413_281.jpg호머의 습작 수채화. 1885년 작. 제목; “상어들; 또한 버려진 표류물(Sharks; also The Derelict)”. 36.8 x 53.2cm. 소장/American Art Museum. The_Gulf_Stream2_500_281.jpg호머의 습작 수채화 “더 걸프 스트림”. 1899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됨. 유화를 그리기 전 여러 각도의 습작을 해본 것들 중 하나. 크기/28.8 x 50.9 cm. 소장/Martin A. Ryerson Collection

호머는 “The Gulfstream”의 마감 단계인 페인트 작품을 10년을 미루어 오다가 1899년에 완성하였다. 이 페인트 작품을 그리기 1년 전에 나소(Nassau)와 플로리다를 다시 방문했고 몇 차례 습작 수채화를 더 그려본 다음에 페인트 작품 “The Gulfstream”을 그렸다. 이는 그가 죽기 10년 전이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였다. 아마도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매듭을 지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듬 해인 1900년에 호머는 “더 걸프 스트림”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미술 아카데미((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호머는 전시회가 끝나 되돌아 온 작품에 다시 페인트를 칠해서 개작을 했는데 개작된 작품은 바다의 수심이 아주 깊어 보이는 색상으로 변해 있다. 인터넷에서 이 작품을 검색해 보면 개작 전 그림과 개작 이후 그림이 나타나 혼동을 일으킨다. 똑 같은 그림인 것 같은데 색상이 달라서 촬영 조건이 달랐거나 인쇄 상의 문제가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되는데 그게 아니라 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색상 만 다른 것이 아니라 확대해서 자세히 보면 여러 곳에 차이가 있다.

호머는 이 개작을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연구소(Carnegie Institute)에 가져가 보여주고 4천 달러를 받아 달라고 요구하였다(당시 화폐가치로 치면 매우 높은 가격일 것이다-필자의 생각). “더 걸프 스트림”은 1906년에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Design)의 전시회에 나왔으며 모든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매입해야 한다고 청원하였다.

당시 신문들의 작품 평은 호불호(好不好)가 갈린다. 대체적으로 호머가 많이 그려온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너무 멜로드라마적(melodramatic)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필라델피아의 한 신문 논평은 관람자들이 작품을 보고 냉소하더라고 썼다. 그 이유인 즉 벌거벗은 흑인이 누워있는 보트를 가운데 두고 상어들이 웃으며 왈츠 춤을 추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또 어떤 신문은 훌륭한 그림을 그려왔던 호머가 이번에는 희귀하고 새로운 소재를 선택하여 역시 걸작을 만들어 냈다고 썼다. 이 그림은 그 해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매입했다.

명화 “더 걸프 스트림”의 해설

호머가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어떤 것들인가?

명화 “왓슨과 상어”에 비교한 해설

미술계 역사에서 윈슬로 호머의 “더 걸프 스트림”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 답이 수수께끼 또는 영원한 미스터리라고 알려져 있다. “짠”한 스토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뭐라고 말할 수 없어 감질만 난다는 평이다. 과거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브라이슨 버로우스(Bryson Burroughs)는 이 그림을 “위대한 풍자가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곧 끝나버리게 될 자신의 운명을 깨끗하게 받아들이기로 하고 태평하기 만한 한 남자의 상황이 영웅적이라는 것이다.

작가 자신은 이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이 들어오면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나는 설명이 필요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크게 후회한다. 나는 여러 번 걸프 스트림을 건너 다녔으므로 당연히 걸프 스트림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상어와 보트는 아주 사소한 아웃사이드 요소일 뿐이다.”

“핵심은 『사람과 보트가 허리케인에 의해 먼 바다로 밀려나가 있는 상황』이지 사람과 보트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흑인과 보트가 다시 해변에 던져졌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흑인이 구출되어 가족과 친구들 곁으로 돌아갔는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는지 상상하는 것은 질문해온 아줌마들이 마음대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호머의 “더 걸프 스트림”은 몇 점 안 되는 19세기의 명작 해양 그림들 중에서 특히 존 싱글턴 코플리(John Singleton Copley/1738 – 1815, 미국인 화가)의 1778년 작 “왓슨과 상어(Watson and the Shark)”를 연상시킨다고 말하는 평론가들이 많다.

Watson_and_the_Shark734.jpg존 싱글턴 코플리(John Singleton Copley)의 1778년 작. 제목; “왓슨과 상어(Watson and the Shark)”. 유화로 그려진 명화에 나온 상어 그림으로서는 거의 최초일 것 같다. 명화는 아닌 기록물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두 포함해도 상어 그림은 단 몇 점 되지 않는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설은 뒤에 따로 나옴. 소장/미국의 National Gallery of Art. 출처/ wikipedia

“아메리카 미술의 서사시적 역사(원제; American Visions: The Epic History of Art in America)”라는 책에는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 1938–2012)가 호머와 코풀리의 그림을 대조해서 해설한 글이 있다. “왓슨과 상어”의 상어 그림은 상어에 대해 잘 모르는 코풀리가 다른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상어를 그렸기 때문에 상어의 아가리가 실제 모습과 다르며 적당히 괴물로 무섭게 그렸다는 것이다. 반면에 호머는 상어를 잘 알기 때문에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두 번째 차이는 코풀리 그림에서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즉각 구조될 수 있는 환경에 있지만 호머의 경우는 반대라는 것이다. 코풀리의 경우 가까운 거리에 항구가 있고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거나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반면에 호머의 경우는 보트의 마스트가 부러져 나갔고 무시무시한 파도가 치고 있으며 위치도 먼 외해이며 상어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사람은 달랑 외롭게 혼자이다. 왼쪽에 배가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먼 거리에서 지나가고 있는 배이다. 그 배가 사람들의 “사회”라고 가정한다면 이 흑인은 사회의 배려를 받을 수 없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구조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버려진 상태”인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입장에서 보면 배(사회)는 가까우면서도 너무 먼 당신(so-close-yet-so-far situation)이다.

두 그림의 내용은 “움직임-동영상 감각”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다. “왓슨과 상어”는 모든 것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트는 앞으로 진행 중이며 작살 무기는 내려 꽂히고 있는 중이며 두 사람이 희생자에게 손을 뻗는 중이며 상어의 몸은 캔버스의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꼬리로 돌아와 있다. 반면에 호머 그림의 요소들은 움직임이 정적이다. 흑인 남자는 정지 상태이고 상어들은 파도의 골이 바뀌는데 따라 몸을 맡기고 편하게 떠서 헤엄치고 있다.

“단테의 작은 배(The Barque of Dante)”와 기타 명작들과 비교한 해설

“더 걸프 스트림”을 “왓슨과 상어”외에 다른 19세기 4 작품에 비견한 논평도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단테의 작은 배(The Barque of Dante)”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메두사호의 뗏목(Raft of the Medusa)”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며 그 외에 토마스 콜(Thomas Cole)의 인생 항로(The Voyage of Life)” 마지막으로는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의 노예선(The Slave Ship)” 이다.

 "왓슨과 상어"외에 "더 걸프 스트림"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 
Barque_of_Dante225.jpg단테의 작은 배 Raft_of_Medusa225.jpg
메두사호의 뗏목
Voyage_of_Life_Childhood225.jpg
인생 항로
Slave_Ship225.jpg
노예선

위 4작품 중 “메두사의 뗏목”을 빼고 나머지 3 작품은 19세기 중엽에 미국인에게 수집되어 미국에서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장자는 뉴욕 사람 존 테일러(John Taylor Johnston)였고 이 사람은 철도 사업으로 성공한 재력가로서 개인 미술관을 창설하여 미국에서 거의 최초로 공공성을 가진 미술관을 등장시켰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최초로 그의 소장품을 기증하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출발에 기여한 인물이다. 존 테일러의 소장품 중에는 호머의 “전선에서 온 포로들(1866)”도 있다.

흥미있는 것은 미국 사람인 호머는 미국에 있는 위 3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이 작품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미술 사학자 니콜라이 치코프스키 (Nicolai Cikovsky, Jr.)는 그의 저서에서 “더 걸프 스트림”은 호머의 바다 경험보다는 “단테의 작은 배” “노예선” “인생 항로” 이들 3작품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라고 했다. 호머 그림의 상어는 “단테의 작은 배”에 그려진 고통에 시달리는 저주받은 영혼들을 아이디어로 활용한 것이며 드라마틱한 바다와 하늘은 “노예선”에서 얻은 영감이며 그리고 그림의 표현 방식은 “인생 항로”와 유사하다고 했다.

“더 걸프 스트림”의 화면 구성 요소들을 장례 의식에 비유하는 해석도 있다. 뱃머리에 검은 십자가 모양이 있고 열려진 해치는 준비된 무덤이며 밧줄들은 시체를 무덤으로 내릴 때 사용하는 줄이며 부러진 마스트 옆의 찢어진 돛은 수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희망과 체념(위대한)의 시각에서 “더 걸프 스트림”을 해설하는 논평들도 있다. 호머가 1876년에 그린 “일어나는 순풍(Breezing Up/A Fair Wind)”에는 보트의 뱃머리에 앵커가 올려져 있는데 이는 희망을 상징한다고 해석된다. 절망 끝에 보이는 희망이 표현된 대작 그림으로는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의 “메두사호의 뗏목(Raft of the Medusa1819년작)”이 있다.

“더 걸프 스트림”의 흑인은 상어나 높은 파도에 신경도 쓰지 않으며 멀리 지나가는 배에도 희망을 걸지 않는다. “메두사 호의 뗏목”처럼 일말의 희망도 걸지 않는다. 거센 파도와 상어들 사이에서 자신의 최후를 담대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떤 평론가들(Sadakichi Hartmann과 Sidney Kaplan)는 미국에서 그려진 가장 위대한 걸작 중의 하나라고 극찬한다. 또 어떤 평론가(Peter H. Wood)는 노예를 거래하던 시대 미국 흑인들의 상황을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평론가들이 호머의 “더 걸프 스트림”을 해설하기 위해 예를 든 작품들의 간단한 소개

왓슨과 상어(Watson and the Shark)

749년 쿠바의 하바나 항구에서 배의 사환으로 일하는 14세 소년 브루크 왓슨(Brook Watson)은 상어에게 물려 오른 쪽 다리 무릎 아래를 잃었고 세 번의 구조 시도 끝에 살아났다. 이 소년은 나중에 사업에도 성공하고 런던 시장이 된다.

미국인 화가 코풀리는 영국으로 갔을 때 런던 시장 부르크 왓슨과 친구가 되었고 이때 왓슨은 상어에게 물렸던 자신의 사건을 코풀리가 그림으로 그려 줄 것을 부탁했다. 코풀리는 같은 내용을 3가지 버전으로 그렸으며 가장 유명한 그림은 첫 번 버전으로 182cmx230cm 대작이다.
Watson_and_the_Shark350.jpg“왓슨과 상어”. 큰 이미지는 위에 먼저 소개한 것 참조할 것. Brook_Watson_h278.jpg소년기에 상어에 물려 다리를 잃은 왓슨은 후에 런던 시장이 되었다

왓슨은 런던 시장으로보다 이 그림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현재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피투성이의 혐오스러운 부분은 파도 밑으로 가려지게 했으나 물에 핏빛이 보여 상황을 암시한다. 코풀리는 하바나에 가본 적이 없고 상어를 본적도 없는 사람이다. 하바나의 랜드 마크인 모로 성(Morro Castle)이 배경에 보이는데 인쇄물의 하바나 항구의 모습을 이용한 것 같다. 상어의 모습은 어류학이나 해부학적으로 빗나간 그림이다. 덤벼드는 상어의 얼굴이 호랑이를 더 닮았으며 콧구멍에서 콧바람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아 이치에 영 맞지 않는다는 평이다.

테의 작은 배(The Barque of Dante)

Barque_of_Dante734.jpg외젠 들라크루아 1822년 작. 제목; 단테의 작은 배. 소장/루블 미술관. 평론가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에 따라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를 “더 걸프 스트림”의 흑인과 비교한다. 물에 빠진 저주 받은 혼령들은 “더 걸프 스트림”에서 상어로 이용되었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말이다.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1822년 작이다. 작품 이름을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Dante and Virgil in Hell)”라고도 한다. 작가의 출세 데뷰작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현재 루블 미술관 소장품이다.

지옥, 연옥, 천국을 순례하는 과정에서 지식인 베르길리우스(고대 로마 시인)의 안내를 받아 단테가 저승의 강 스틱스(River Styx)를 지나가고 있다. 배경의 죽음의 도시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보이고 강에는 괴로워하는 영혼들이 가득 차 있다. 혼령들(호머의 ‘더 걸프 스트림’의 상어로 비유됨)이 보트에 오르려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단테는 두려움에 떨고 있고 지식인 베르길리우스(고대 로마 시인)가 단테를 붙잡아 안정시켜 주고 있다.

Barque_of_Dante2_300.jpg보트의 우측 후면에서 뱃전을 잡고 있는 혼령의 얼굴.

노 젓는 사람을 감고 있는 옷은 강한 바람이 부는 상황을 나타내며 이 뱃사공은 플레기아스( Phlegyas/그리스 신의 하나)이다. 배에 탄 모든 사람이 강풍을 맞고 있다. 보트는 알 수 없는 더욱 위험한 목적지로 가고 있으며 플레기아스의 다리가 흔들리는 배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그가 이 강의 험난함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뒤는 거대한 용광로여서 도망가거나 피신할 장소가 하나도 없는 절망으로 미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궁지에 몰렸을 때 각자가 어떤 심리상태를 나타내는지 명료하게 나타낸 그림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주변의 소란 상태와 거리를 두면서 단테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으며 이와 정반대로 단테는 두려움과 공포로 몸의 규형을 잃고 있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넋이 나가 목적도 없는 일에 집요하게 미쳐있거나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다. 가장 왼쪽과 오른쪽 및 배의 후면에서 뱃전을 움켜쥐고 있는 3 혼령의 표독한 얼굴들이 그림 안의 공간에 밀실 공포증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사 호의 뗏목 The Raft of the Medusa

석판 인쇄공인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가 27세 때인 1819년에 완성한 그림으로 가로 7. 16 미터 세로 4.91 미터의 거대한 대작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화가는 32 세에 사망했다. 조용한 화풍의 신고전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에 주제의 선택이나 드라마틱한 표현이 낭만주의 시대를 열게 하였다.

Raft_of_Medusa734.jpg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1819년 작. 7.16 x 4.91m 크기의 대작. 소장/루블 미술관. 실제 있었던 비극적인 표류 사건을 표현한 작품. 147명 중 15명이 인육을 먹으며 살아남았다. 그림은 2개의 피라미드 윤곽으로 구성되어 있고 작은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흑인이 배치되어 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하는 순간의 모습이다.

1816년에 난파된 프랑스 해군의 프리깃 함 메두사 호(frigate Méduse)를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근해에서 좌초되었으며 조난된 사람은 모두 400여명이었고 탈출할 수 있는 보트는 6척이 있었으나 여기에는 250명 밖에 탈 수 없었다. 나머지 최하 147 명이 급조된 뗏목에 탔으며 거친 파도 속에서 이 뗏목을 보트들이 끌고 가다가 분리되어 뗏목은 버려진 고아가 되었다.

프랑스 당국은 구조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우연히 지나가는 배에 의하여 13일 만에 구조되었으나 15명 밖에 생존자가 없었다. 이들은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다가 약자를 죽이거나 지쳐 죽은 사람들의 인육을 먹은 것으로 밝혀져 큰 사회적 사건이 되었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생존자들을 인터뷰해 보았으며 죽어가는 사람과 시체의 피부색을 알아내기 위해 병원과 영안실을 견학하였다. 시체가 부패
Raft_of_Medusa2_400.jpg 왼쪽 하단 확대도.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두 사람. 구조선이 보인다는 외침 소리에 아랑곳 없이 아버지가 죽은 아들을 무릎에 놓고 멍한 상태로 있다.
하는 과정을 알기 위해 팔다리를 화실에 가져다 놓기도하고 머리를 지붕 위에 보관하기도 하였다. 뗏목도 생존자와 목수의 의견을 들어 실물에 가깝게 표현하였다.

화면을 관찰해 보면 살아있는 사람은 15명이며 나머지는 죽어가고 있거나 죽은 사람들이다. 생존자들이 멀리서 접근해오고 있는 선박을 발견하고 있는 순간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실물 크기이며 앞쪽 사람은 실물의 2배 크기여서 관람자가 그림으로 가까이 가면 3D 영상처럼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는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은 “단테의 작은 배”를 위시하여 몇몇 선대의 화가들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 중의 하나에 싱글턴 코플리의 “왓슨과 상어(1778)”가 있다. “왓슨과 상어”에서 액션의 중심에 축에 있는 것이 한 흑인이며 이를 기점으로 전개된 인물들의 액션이 바다의 풍경을 압도하여 보이지 않게 한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에서도 구도상 꼭지점에 흑인을 배치하였다.

이 모방은 호머에게 전달된다. “더 걸프 스트림”에서 승선자는 한 사람이지만 구도상의 꼭지점에 흑인이 있는 것은 “왓슨과 상어” 그리고 “메두사 호의 뗏목”에서 온 영향이다. 망가진 보트와 위협적인 파도의 표현 방식은 “메두사 호의 뗏목”을 닮았고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배는 “메두사 호의 뗏목”에 나타난 구조선 아르구스 호 (Argus)를 가져다 놓은 것이나 같다.

인생 항로(The Voyage of Life)  미국인 토마스 콜(Thomas Cole)의 1842년 작.

사람의 인생을 보트를 타고 긴 강을 따라가는 항로에 비유하여 유년기(childhood), 청소년기(youth), 장년기(manhood), 노년기(old age), 4단계로 나누어 그렸다. 강의 환경은 19세기 중엽의 미국의 자연환경이다. 각 그림 마다 수호천사(guardian angel)가 등장한다. 각 그림의 배경이 나이에 맞춘 4계절로 표현되어 있어서 인생의 절기를 설명하는 의미가 강조된다. 각 그림의 보트 진행 방향은 이전 그림의 반대로 반복된다.

그림1. 유년기(childhood)
어두운 동굴에서 아기를 보트에 태우고 나온 수호천사가 꽃이 만발한 짙은 녹색의 자연 속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수호천사가 아이를 보호하며 하는 여행이다. 환경의 모든 것이 조용하고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다. 아기의 결백함과 천진함 즐거움이 표현된 것이다. 어두운 동굴은 알 수 없는 인간의 과거를 상징한다. 보트 뱃머리 조각상 손에는 세월을 계산하는 모래시계가 쥐어져 있다.

Voyage_of_Life_Childhood734.jpg토마스 콜의 1842년 작. “인생 항로” 4부작 중 “유년기”. 꽃이 만발한 봄날에 축복을 받으며 어두운 동굴에서 아기를 태운 보트가 나온다. 이 아기는 수호천사의 보호를 받으며 인생항해를 시작한다. 소장/ 미국 National Gallery of Art.

Voyage_of_Life_Childhood2_600.jpg위 “유년기”의 부분 확대도. 보트 뱃머리 선수상(figurehead)의 치켜든 손에 모래시계가 들려있다. 인생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림2. 청소년기(youth)
수호천사와 이별(독립)한 소년이 스스로 보트를 조종하면서 하늘 위에 빛나는 성(꿈)을 향해 간다. 풍경은 여전히 풍부한 푸른 환경이다. 그러나 보이는 자연의 크기는 넓어져 있다. 소년의 앞으로 쏠린 몸 자세는 열망과 에너지를 상징한다. 출발 지점에서는 물이 조용한 것 같지만 화면의 오른쪽을 자세히 보면 이 강의 물살이 거칠어지고 있으며 바위 암초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으며 중앙 원거리에 있는 높은 산까지 가면서 수많은 난관의 협곡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Voyage_of_Life_Youth734.jpg
토마스 콜의 1842년 작. “인생 항로” 4부작 중 “청소년기”. 이제 더 이상 수호천사가 보트의 키를 잡아주지 않는다. 스스로 키를 잡고 멋지게만 보이는 유토피아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소장/미국 National Gallery of Art.

Voyage_of_Life_Youth2_600.jpg수호천사와 헤어지는 부분의 확대도. 우측 상단 구석에 흰 거품이 일어나는 물이 보인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보트의 화려한 장식들은 아직 온전하다.   

그림3. 장년기(manhood)
어른이 된 항해자는 이제 인생의 시련에 봉착하기 시작한다. 청명했던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였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나무들은 바람에 시달려 울퉁불퉁 휘어있고 잎들도 다 떨어져 나갔다. 천사는 먼 구름 사이에서 남자를 지켜보고 있지만 남자는 천사를 보지 못한다. 그에겐 지금 자신감도 없고 자신을 추스리지도 못한다(보트를 콘트롤할 수 없는 상황). 다만 천사가 도와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만 가질 뿐이다.

보트는 손상되어 있고 키의 손잡이가 없어졌다. 강물은 급하게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위들과 충돌하며 소용돌이와 흰 거품을 일으킨다. 가파른 급류는 폭이 좁고 바위 장애물이 많아서 이 사람의 인생이 그 통로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지 걱정을 자아낸다. 검은 구름 속에서는 악령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중심에서 위로 약 1/3 위치에 있는 약간 흰구름 같이 보이는 부분).

희미하게 보이는 바다는 생의 마지막을 의미하며 남자는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다. 전체 화면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부분은 오른쪽 가운데에 위치한 석양빛 수평선 부분이며 해당 범위가 매우 작다. 감상자의 눈은 자꾸 이 쪽으로 끌려간다.

Voyage_of_Life_Manhood734.jpg토마스 콜의 1842년 작. “인생 항로” 4부작 중 “장년기”. 크기/202.6cm x 134.3cm. 미성년을 벗어나자 세상은 온갖 위협으로 그를 포위한다. 키가 부러져나간 보트가 낭떠러지 계곡을 만난다. 장년의 인생은  속수무책이며 신의 가호를 비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필자 주/특정 종교의 개념임).

Voyage_of_Life_Manhood_crop600.jpg급 물살 부분의 확대도. 남자는 속수 무책으로 기도만 하고 있다. 너무 기독교적인 설정이다. 한국적으로 말하자면 팔자소관 개념이다(필자 생각).

Voyage_of_Life_Manhood2_crop600.jpg화폭의 중심 윗부문 시커먼 구름 아래에 약간 희게 보이는 부분은 악령들이 내려다 보고 있는 장면이다. 악령이 하나는 아니며 이 확대도는 주인공격인 악령 부분이다.

그림4. 노년기(old age)
죽음을 상징하는 영상이다. 인생항로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았으며 노인이 되었다. 물은 잔잔하고 강물은 영원의 바다로 흐르고 있다. 보트는 시련을 받아 낡고 부서진 모습이며 뱃머리 조각상과 모래시계도 없어졌다. 수호천사가 노인 곁에 떠있고 멀리 구름 속에서 또 다른 천사가 마중을 나오고 있다. 노인은 종교적인 신념이 자기를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기뻐한다. 영생의 획득을 상징한다.

Voyage_of_Life_Old Age734.jpg토마스 콜의 1842년 작. “인생 항로” 4부작 중 “노년기”. 크기/133.4 × 196.2cm. 수호천사와 하늘에서 마중 나오고 있는 천사가 노인을 안내하고 있다. 천당이란 뜻이다. 천수를 누린 성공적인 인생이다. 여기까지 오지 못한 삶이 얼마나 많은가? 소장/미국 National Gallery of Art.

Voyage_of_Life_Old Age2_600.jpg성공적으로 노인에 이른 장면의 확대도. 화려했던 뱃머리 장식이 모두 사라진 낡은 보트가 되었다. 그러나 물은 잔잔하다. 신을 믿었으므로? 안착된 것이다.


노예선(The Slave Ship).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의 1840년 작

1781년 노예선의 선장 종(Zong)은 133명의 노예들을 바다에 버리고 항해하였다. 실제 있었던 이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이다. 강렬한 원색이 겹겹으로 덧칠해져 있어서 화면이 어지러우며 무엇을 그렸는지 혼란을 일으킨다. 자세히 보아야 석양을 등지고 멀어져 가는 범선이 보인다. 우측 하단에 산채로 버려진 흑인 노예들의 팔다리가 파도 사이로 보이며 물고기들과 갈매기들이 시체를 먹으려고 몰려들어 있다. 순수한 색채가 토해내는 강렬함과 어지러운 구성이 오히려 감정적인 느낌을 자극한 작품이다. 새빨간 원색은 피의 공포를 암시하고 검은 부분은 비구름인 동시에 비극을 암시한다. ※부분 확대도를 보아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기가 어려워 생략한다. 아마 실물을 보아야만 가능할 것 같다.

Slave_Ship734.jpg

명화는 아니지만 고전으로 취급되는 상어 그림들

Voyage_Cochin_China700.jpg 고전 그림/금속을 공격하는 상어/상어가 보트에서 내려져 있던 쇠사슬을 공격하고 있다. 어부가 놀라 도망가려고 급히 노를 젓고 있다. 1792년, 1793년에 영국 귀족 Barrow, John 경이 시행한 “코친차이나(Cochin China) 항해” 여행기의 203쪽 그림. 코친차이나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베트남 남부의 옛 이름. 그림의 장소는 인도네시아 쟈바섬이다.  상어는 로렌지니 암풀라 감각기관으로 사냥감을 감지하며 가끔 보트의 스크류나 금속 물체가 발산하는 전기장이 먹이와 유사할 때 이 물체를 공격한다. 현대 과학의 이론에 부합하는 옛날 바다 여행자의 그림이다. 소장/British Library. Wiki/uploaded by Metilsteiner


Jules_Verne2_364.jpg Jules_Verne1_364.jpg
1869년에 나온 쥘 베른(Jules Verne/1828~1905)의 고전 과학소설 “해저 2만 마일(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의 삽화인 상어의 공격 장면. 이 이후 영화 “죠스”가 히트를 칠 때까지 상어는 무조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인식되어 왔다.

Sharks_Port_Philip_Bay292_325.jpg shark_hunting_vessel436.jpg 왼쪽 그림/제목; “질롱 만(Geelong Bay/오스트레일리아)의 상어와의 싸움”. 목판화. 작가/쥴리안 로씨 애쉬튼(Julian Rossi Ashton ,1851-1942). 소장/State Library of Victoriaggg. 우측 그림/상어잡이 어선의 묘사 그림. 1870년. 작가/ Schubert. 출처/Another old painting about a shark attack.

Steel_Engraving_734.jpg 1860년 뉴욕에서 강판에 인화된 그림(Steel Engraving). 출처/www. etsy. com/ listing/ 118846139/ 1860- antique- steel- engraving- of- shark

Painting_by_Paul_h249.jpg jaws1_h249.jpg Jaws2_h249.jpg 왼쪽 그림/백상어가 보트를 공격했다는 설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 연대와 작가 미상. 출처/sharks77551.yuku.com/topic/2280/. 우측 2 그림/아직 고전적 가치가 생겼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월이 더 흐르면 그렇게 될 것이다. 피터벤츨리 작 소설 “죠스(1975년)”와 “죠스2(1978)”의 표지. 영화로 만들어진 죠스 1편은 전 세계에 상어 공포증을 일으켰다.

희소한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상어 이미지들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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