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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The Silent World) - 제1장 인간 물고기 Menfish

제1장 인간 물고기 Menfish

1943년 6월 어느 날 아침, 나는 프랑스 리비에라의 반돌 역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 역에서 파리로부터 지급으로 탁송된 나무 상자 화물 하나를 찾았다. 그 상자 속에는 수 년에 걸친 투쟁과 꿈의 결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나와 에밀르 가냥(Emile Gagnan)이 설계한 자동식 잠수용 압축 공기 호흡기로서 우리의 앞길에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장비였다. 나는 그것을 찾아 들자마자 나의 다이빙 친구인 필리쁘 따이예(Philippe Tailliez)와 프레드릭 뒤마(Frederic Dumas)가 기다리고 있는 빌라 바리(Villa Barry)로 급히 차를 달렸다. 아마 어떤 어린이도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열어 보면서 우리가 처음으로 애쿼렁(Aqualung; 직역하자면 ‘물폐’ 또는 ‘물허파’)을 뜯어 볼 때처럼 큰 흥분을 느껴 본 일이 없으리라. 만일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다이빙에는 혁명이 일어날 판이었던 것이다.

상자 속에는, 압축 공기가 들어 있는 실린더 3개가 서로 연결 조립되어 있고 그것에 탁상 시계만한 크기의 레귤레이터(호흡 조절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레귤레이터 양쪽에는 고무 튜브가 접속되어 있고, 이 두 가닥 튜브는 가운데 마우스피스를 사이에 두고 합쳐져 있었다. 이 장비를 등에 짊어진 다음 눈과 코를 동시에 씌워 주는 수경(Mask)과 고무 오리발(rubber foot fins)을 착용하고서 자유롭게 바닷물 속을 유영해 보려는 것이 바로 우리의 꿈 같은 계획이었다.

우리는 호기심 많은 해수욕 객이나, 이탈리아 점령군이 우리들의 일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은폐된 한 작은 포구로 서둘러 달려갔다. 나는 공기통의 공기 압력을 확인해 보았다. 용기 속에 들어 있는 공기의 압력은 대기압의 150배나 되는 것이었다. 너무나 흥분되어서 최초의 다이빙을 차분히 의논해 가면서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고글을 쓰고 맨몸으로 다이빙하는 데 프랑스의 
si-9_370.jpg 해저탐사대(The Undersea Research Group) 대원인 따이예가 자동으로 숨쉬게 해주는 애쿼렁을 메고 완벽한 자유를 누리면서 유영하고 있다.
제1인자인 뒤마는 위험한 경우에 나를 도와 주어야 하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며 백사장에서 편한 자세로 대기하기로 했다.

나의 아내 시몬느는 수면에 떠서 숨대롱(snorkel)을 물고 숨을 쉬면서 수경을 통해 물속에 있는 나를 살펴보기로 했다. 만일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때 아내가 신호를 보내면 뒤마가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도록 되어 있었다. 리비에라에서 뒤마는 ‘디디(Didi)’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스킨 다이빙(Skin diving; 자맥질)으로 수심 20m까지 잠수할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3개의 공기통으로 묶여진 무거운 장비를 짊어졌다. 레귤레이터는 목 뒤에 위치하게 되고, 고무 튜브는 등 뒤에서 머리 위를 넘어 가슴으로 내려졌다. 나는 수경의 유리 안쪽에 침을 뱉어서 문지른 다음 파도 치는 바닷물에 씻어냈다. 이렇게 하면 유리 안쪽에 뿌연 서리가 끼지 않는다. 나는 수경의 고무 벽이 이마와 광대뼈에 꼭 맞도록 눌러썼다. 마우스피스를 입술 안쪽으로 밀어 넣고 돌출되어 있는 고무 혹(nodule) 두 개를 이빨 사이에 꼭 물었다. 내가 물 속에서 마셨다가 내쉬는 공기는 공기통의 굵은 바늘 구멍 만한 분사구를 통해 흘러나오게 되어 있었다. 나는 모두 23kg이나 되는 장비를 진 채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처럼 어기적 어기적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 갔다.

잠수 폐(dive lung/애쿼렁-Aqualung과 같은 말)는 23kg으로 무겁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약간 뜨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나는 내 몸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의해서 어느 정도의 부력을 갖는지를 측정하기 위하여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넣어 보았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란 고체가 액체 속에 잠기면 그 고체 때문에 밀려나간 액체의 무게만큼 부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뒤마는 나에게 3kg의 납 덩어리로 된 중량 벨트를 차게 해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의해서 내 몸이 약간 뜨는 부력을 상쇄시켰다. 내 몸은 부드럽게 모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러자 힘들여 빨지 않아도 마우스피스에서 달콤한 공기가 입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아주 가벼운 휘파람 소리가 나고, 내쉴 때는 꾸루룩 꾸루룩 하면서 약한 물거품 소리가 들려왔다. 호흡 조절기는 내가 편하게 숨쉴 수 있도록 압력을 정확히 조절해서 공기를 보내주고 있었다.

물 속에 뛰어들 때마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나는 내 자신이 마치 외계에서 별안간 나타난 침입자가 된 기분으로 바닷속을 둘러보았다. 내 눈 밑에는 과히 크지 않은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그 속에는 검푸른 해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새까만 성게, 꽃같이 아름답고 작은 흰색의 해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그 그림 같은 환경 속에서 조용히 삶을 즐기고 있었다. 모래톱은 투명한 푸른 물 속 저쪽으로 완만하게 경사를 지으며 청색의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수면을 바라보니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어 눈이 부셨다. 나는 두 팔을 나란히 몸통에 붙이고 서서히 고무 오리발을 찼다. 경사면을 내려가면서 속력이 붙자 물 밑의 흰 모래 바닥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물 차기를 멈췄다. 그러나 한 동안이나 나의 몸은 꿈꾸듯 글라이딩하며 내려갔다. 내 몸이 정지되었을 때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어 허파 속의 공기를 모두 내보내고 숨을 참고 있었다. 허파의 축소로 내 몸의 부피가 줄어든 까닭에 부력이 약해져서 나의 몸은 기분 좋게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다시 마음껏 숨을 들이마시고 가만히 있어 보았다. 그러자 나의 몸은 부력이 커져서 수면 쪽으로 슬그머니 떠올랐다.

중성 부력에서 약간 벗어나는 내 몸의 부력 차이는 폐의 크기를 조절하면 정밀하게 조절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는 천천히 정상적으로 숨을 쉬면서 머리를 숙인 채 수심 10m 속으로 유연하게 헤엄쳐 내려갔다. 수심 10m의 수압이라면 지상의 대기압에 비해 두배나 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수압의 증가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애쿼렁은 수압이 증가할 때 마다 자동적으로 수압과 동등한 압력의 압축 공기를 내보내 주었다. 허파의 공간은 압력을 받으며 부피가 줄지만 압축된 공기가 들어가서 수압과 밸런스를 유지해 주면 찌그러들지 않는다. 이 대응 압력은 몸 전체의 액체로 전도되어 외부 수압과 맞서는 것이다. 혈액 같은 액체는 압력을 받아도 부피가 줄지 않으며 고체인 뼈의 부피도 압력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높은 수압을 받아도 몸이 정상적인 상태가 된다. 나의 두뇌에도 압력이 증가되고 있다는 사실이 전달 되지 않고 있었다(역자 註; 일부 미디어들의 오도된 정보 때문에 물 속에 들어가는 다이버는 엄청난 수압을 이겨내는 초인간으로 여겨지는 일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단지 귀와 사이너스(sinus)에서 약간의 통증을 느끼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편했다. 보통 비행기가 착륙할 때 우리는 침을 삼켜서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이런 식으로 침을 삼켜서 유스타기오 관을 뚫어 주자, 그 통증도 사라졌다. 나는 귀마개를 끼우지 않았다. 물 속에서 귀마개를 끼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귀마개는 고막과 귀마개 사이에 차단된 공간을 만들게 되고 유스타키오 관 내의 압력이 증가되면 이 공간은 압력이 낮은 에어 포켓 상태가 됨으로 고막이 바깥쪽으로 밀려나가면서 끝내는 고막의 파열을 가져온다.

나는 수송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식으로 바다 밑바닥에 내려 앉았다. 요리 접시처럼 둥글고 납작한 염소 도미(Goat Bream)들이 떼를 지어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돌 투성이인 바닷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수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수면에서 빛이 반사되고 있었는데 마치 면이 울퉁불퉁한 거울이 빛을 반사시키는 것 같았다. 그 거울 한가운데에 나의 아내 시몬느의 날씬한 몸매가 인형처럼 실루엣이 되어 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 인형 같은 물체도 나에게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나는 숨을 내쉬면서 환상 속에 젖어 들었다. 내가 내쉰 공기 거품이 수압이 낮은 쪽으로 상승하면서 커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묘하게도 자루를 떼어낸 버섯처럼 밑이 움푹 들어간 채 납작하게 위로 떠올라 갔다. 공기의 부력이 물이라는 매질을 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가 앞으로 다이빙할 때는 이 공기방울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면에 공기 거품이 끓어 오르는 한, 물 속의 다이버는 숨쉬고 있는 안전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공기 거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염려되는 일이 있거나 혹은 위급한 상태가 발생했거나 또는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인 것이다. 내가 내쉰 공기는 나의 등쪽에 있는 레귤레이터 케이스를 통해서 빠져나가는데 공기가 빠져나가는 와글거리는 소리가 나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외롭다는 느낌이 덜 들었다.

나는 바위 위를 헤엄쳐 갔다. 나는 기분만으로는 내가 그 염소 도미들과 비교해서 더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공기보다 8백 배나 높은 밀도를 가진 물이라는 매질 속에서 인간이 물고기처럼 헤엄을 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했었다. 움직이지 않고 허공 제자리에 가만히 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막힌 것이었다. 머구리처럼 수면 위에서 내려 준 공기 호스나 밧줄에 매달리지 않은 채 그렇게 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두 팔을 날개처럼 벌리고 날아다니는 꿈을 꾸어 본 적이 자주 있으나 지금은 날개도 없이 날고 있는 것이었다(나는 처음 애쿼렁으로 유영을 해 본 이후로는 날아다니는 꿈은 꾸어 본 적이 없다).

나는 헬멧 다이버가 생각났다. 발에는 무거운 납이 달린 신발을 신었고 몸에는 거추장스러운 공기 호스가 탯줄같이 달라붙어 있으며, 머리는 구리 통 속에 갇혀 있는 헬멧 다이버가 지금 내가 있는 이 수심에 도착해서 걸어간다면 단 몇 미터를 가는데도 무진 애를 써야 하며 한 발짝씩 더디게 발을 내 디디어야 한다. 나는 전에 스킨 다이빙을 하면서 여러 번 물 속에서 헬멧을 쓴 다이버를 본 일이 있다. 그는 머리보다도 다리 쪽에 모든 무게가 집중되어 있어서, 한 발짝을 옮기려 해도 위험하기 짝이 없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했는데 그 꼴은 마치 외계에 들어와 병신이 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우리가 애쿼렁을 실험해 본 이 날 이후 우리는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들어가 물고기가 비늘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맨 살의 피부로 느끼면서 자유롭게 그리고 수평자세로 수 십 리를 헤엄쳐 다녔다.

나는 이 신비한 애쿼렁을 메고서 별의별 몸짓을 다 해보았다. 앞으로 뒹굴면서 공중제비도 해보았고, 나무통이 구르듯 옆으로도 굴러 보았다. 물구나무를 서서 땅 바닥에 손가락 한 개만 짚고 거꾸로 서 있으면 킥킥 터져오는 웃음소리를 참아 내느라고 무척이나 애를 먹기도 했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흘러나오는 공기의 리듬에는 변화가 없었다. 중력과 부력에서 해방된 나는 그 때 우주 공간을 두루 날아다녔던 것이다.

두 팔을 모두 사용하지 않아도 나는 시속 2노트 정도로 전진할 수가 있었다. 나는 내가 내쉰 공기 거품이 위로 올라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솟아 올라보기도 하고, 수심 20m가 되는 곳으로 내려가 보기도 했다. 우리는 전에 애쿼렁 같은 장비 없이도 그 정도의 수심은 여러 번 들어가 보았지만, 그 수심 이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이 신비한 장비로는 얼마나 깊이 내려갈 수 있을까? .

내가 그 작은 포구의 물 속에 들어온 지 15분이 지났다. 레귤레이터에서는 공기 흐르는 소리가 꾸준히 들려왔고 수심은 20m 정도였다. 내가 가진 공기로는 그 정도의 수심에서 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양이었다. 나는 추워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물 속에서 버텨 보기로 작정했다. 이 물 속에는 바위 굴이 있었는데, 이전에 우리는 자맥질로 내려와서 이 바위틈을 언뜻 보고는 빨리 떠올라 가야 했기 때문에 그 속은 늘 궁금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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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토 선장이 콜럼비아 영화사와 합작으로 “The Silent World”를 테크니칼라 필름으로 촬영하던 때. Source/http://theoceanvoyager.com

나는 어두운 그 바위틈 속으로 조금씩 헤엄쳐 들어갔다. 나의 가슴은 바닥에 긁혔고 공기 탱크는 천장에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이런 때에 인간은 누구나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나는 궁금한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는 센스가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머리만 잘 쓰면 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나의 몸은 자꾸 떠오르면서 굴의 천장에 부딪혔다. 나는 이미 1/3의 공기를 써버렸기 때문에 차츰 부력이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역자 註; 공기도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 이런 바보짓을 계속하다가는 공기 호스가 천장 바위에 걸려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장을 보는 자세로 돌아누웠다.

동굴 천장에는 바다가재들이 무더기로 붙어있었다. 바다가재들은 흡사 거대한 파리들이 천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다가재들은 모두 촉수와 머리를 동굴 입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바다가재들이 내 가슴에 닿지 않게 하려고 공기를 적게 마시며 호흡하였다. 폐 부피를 줄여서 떠오르는 부력을 막아야 했다. 물 밖의 프랑스는 적군에게 점령된 상태였고 주민들은 모두 굶주리고 있었다. 나는 찬 물 속에 들어가 있게 되면 수백 칼로리의 열을 빼앗긴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나는 500g 정도는 될 것 같은 바다가재 두 마리를 골라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천장에서 떼어 냈다. 그것을 가지고 수면으로 향했다.

시몬느는 줄곧 나의 공기 거품을 좇아 다니며 수면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다이빙해 내려왔다. 나는 바다가재를 아내에게 건네 주고 올라가게 한 다음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아내가 불쑥 떠오른 곳은 어떤 프로방스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있는 갯바위 아래였다.

낚시꾼은 금발의 여인이 꿈틀거리는 바다가재를 손에 쥐고 파도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걸 좀 지켜봐 주시겠어요?”하면서 시몬느가 바다가재를 바위 위에 던져 올려놓았을 때, 그 낚시꾼은 그만 낚싯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시몬느는 다섯 차례나 물 속으로 다이빙해 들어와 내가 잡아주는 바다가재를 바위 위로 옮겼다. 나는 그 낚시꾼이 보지 않도록 원래 내가 들어갔던 포구 쪽으로 돌아가서 상승해 나왔다. 시몬느는 우글우글하는 바다가재를 모두 자기가 잡은 것이라면서 “한 마리 가지세요, 제가 한 것같이 해보시면 아주 잡기가 쉬울 거예요.”하고 낚시꾼에게 말했다.

잠수해서 잡은 보물을 요리해 점심을 먹으면서 따이예와 뒤마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물었다. 우리는 애쿼렁을 가지고 앞으로 해 나아가야 할 계획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흠뻑 행복에 젖었다. 따이예는 테이블 보에다 낙서를 하면서 계산을 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바다 속을 수심 1야드 정복할 때마다 약 3십만㎦ 의 부피에 해당하는 생존의 공간을 인류에게 열어 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었다. 따이예와 뒤마 및 나 세 사람은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온 사이였다. 우리는 8년 동안이나 함께 고글 다이빙을 하면서 바다에서 살아온 관계였다. 숨겨진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의 새 열쇠는 경이를 약속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해보면 ……

우리들이 처음 다이빙을 할 때 사용했던 도구는 잠수안경(underwater goggle)이었다. 이것은 수 백 년 전부터 폴리네시아와 일본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6세기에는 지중해에서 산호를 채취하는 다이버들이 쓰던 것이다. 이것은 지난 50년 간 주기적으로 재발견의 과정을 거쳤다. 인간의 맨눈은 물 속에서 거의 볼 수가 없지만 물이 들어오지 않는 안경을 쓰면 잘 보이게 된다.

1936년 어느 일요일 오전, 나는 뚤롱(Toulon) 근처의 르 모리용(Le morillon) 바다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페르네 고글(Fernez goggles)을 쓰고 지중해의 물 속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당시 정규 해군의 준사관이었고, 수영을 잘 해서 유일한 취미는 자유형으로 헤엄치는 폼을 더욱 세련되게 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바닷물이란 것은 짜기 때문에 나에게는 눈을 쓰리게 하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르 모리용의 자갈이 깔린 얕은 바닷속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위 위에는 녹색, 밤색, 은색 등으로 빛나는 해초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수정같이 맑은 물 속에서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숨을 쉬려고 일어서니 전차, 사람들, 가로등, 전봇대가 보였다. 두 눈을 다시 물 속에 잠갔다. 내가 허리를 굽히는 순간, 인간의 문명은 사라졌다. 나는 물 속은 보지 못하고 바다 위로만 떠돌아다닌 사람들이 목격하지 못했던 정글 속에 있었던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운 좋게 인생이 뒤바뀐 것을 알게 되면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돌아올 수 없는 외길로 빠져 든다. 내가 바다에 눈뜨게 되었던 그 해 여름, 르 모리용에서 그와 같은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지중해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에 아주 흥미 있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영웅들은 모두 페르네(Fernez)가 발명한 물안경, 즉 페르네 고글과 르 꼬를리유(Le Corlieu)가 고안해 낸 오리발 및 물 속에서 물고기를 찌를 수 있는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새너리에서는 르 무와뉴라는 사람이 바닷속에 들어가서 고무줄 총(slingshot)으로 물고기를 쏘아 죽였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한편, 프레드릭 뒤마(Frederic Dumas)라는 전설적인 존재의 이름도 알게 되었는데, 이 사람은 어느 물리학 교수의 아들로서 커튼에 사용되는 막대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물과 뭍이라는 적대적인 세계의 국경을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뒤마를 만난 것은 내가 혼자서 고글 다이빙을 시작한 지 2년 뒤였다. 뒤마는 나에게 자신이 다이빙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했다. “1938년 여름의 어느 날, 나는 물에서 나와 바위 위에 있었죠. 그런데 그 때 나는 진짜 인간 물고기를 보았습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진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숨을 쉴 때도 결코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올리는 일이 없었어요. 그는 물 속에 잠겨 있다가 떠 오른 다음에도 그대로 물을 쭉쭉 뿜어냈는데, 입에는 튜브를 물고 있더군요. 게다가 발에 고무 오리발까지 끼고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놀라 버렸습니다. 나는 그의 유연한 동작에 혀를 차면서 앉아 있다가 그가 추워서 물 바깥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지요. 그 사람은 필리쁘 따이예(Phillippe Tailliez)라는 해군 대위였습니다. 그가 물 밑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내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의 것이고 고글은 내 것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고글과 오리발을 어디에 가면 구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또 정원에 물을 뿌리는 호스를 이용하여 숨대롱을 만드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더군요. 우리는 함께 물고기 사냥파티를 하기로 날을 잡았습니다. 이 날이 바로 나의 해저 생활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전기를 가져오게 한 날입니다.”

따이예는 이미 내가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날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이었다. 따이예와 뒤마 그리고 내가 다이빙 팀을 형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저 사냥은 대유행이었다. 석궁, 화살, 작살, 스프링 총, 카트리지의 폭발력을 이용해서 발사하는 화살 외에도 물고기를 펜싱 칼로 찔렀다는 미국인 작가 가이 질패트릭(Guy Gilpatric)의 멋진 기술까지 모조리 등장하였다. 물고기 사냥 다이빙의 유행으로 연안의 어족은 거의 고갈되었고, 때문에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의 심한 분노까지 야기시키게 되었다. 어민들은 우리가 물고기를 도망가게 했고, 그물을 파손시켰으며, 심지어 어망에 걸린 물고기를 훔쳐 갔고 다이버들이 숨대롱(snorkel)을 불어대는 바람에 차가운 미스트랄(mistral; 지중해의 태풍)까지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뒤마는 다이빙을 하다가 큰 파워 보트에서 인상이 고약한 사람이 위통을 벗어 젖힌 채 위압적 태도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의 몸통에는 무희와 마레칼 뤼오트나 파파 조프레 같은 유명한 장군들의 문신이 요란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가 디디(Didi; Dumas의 애칭)를 향해 큰소리로 부를 때 디디는 그만 겁에 질렸다. 그가 바로 카르본느라는 이름의 사내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알 카포네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마르세유의 무시무시한 깡패였다.

카르본느는 디디를 배의 사다리 쪽으로 가까이 오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디디가 다가가자 손을 잡아 배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디디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이냐’고 물었다. “아, 그저 자맥질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디디는 기가 죽어 대답했다. 그러자 카르본느가 말했다. “나는 도심지에서 벗어나 조용히 쉬고 싶어서 이곳에 자주 온다네. 자네가 하는 일은 꽤 재미가 있어 보이는군. 자네가 하는 일을 내 배를 이용해서 하게나.”

디디를 후원해 주겠다는 그 불량배 씨는 어부들이 다이버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화를 내면서 자기 보트를 어선들이 모여 있는 곳의 한 가운데로 몰고 갔다. 그러고는 털이 잔뜩 난 팔뚝을 디디의 어깨에 얹고는 소리를 질렀다.

“어이, 이것 봐! 이 사람은 내 친구라는 것을 잊지 마!”

우리는 디디가 깡패와 휩쓸렸던 일을 나무랐다. 어쨌든 그 뒤로는 어부들은 더 이상 디디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어부들은 다이버들의 활동을 정부에 항의했고 그로 말미암아 다이버들의 해저 사냥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물 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장비와 카트리지의 폭발력으로 발사되는 작살 총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다이버는 수렵 허가증을 휴대하여야 하며 정부가 인정한 해저 사냥 클럽에 가입해야 했다. 그러나 망통 지방에서부터 마르세유에 이르는 전 해안에는 이미 대형 물고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형 회유성 물고기들은 무기의 사정거리를 교묘하게 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회유성 물고기들은 얄미울 정도로 아주 정확하게 사정거리를 피했다. 고무줄 작살로부터는 1.5m 간격을 유지했고 샤프트가 날아가는 작살 총을 들고 들어가면 사정거리인 2.5m를 약간 벗어나는 거리를 유지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해저에까지 들어가 해를 끼치는 동물은 아니었다. 그랬던 인간이 별안간 물 속에 뛰어들어 전투를 즐기자 물고기들은 재빨리 안보 전술을 습득해 버렸던 것이다.

싸단-2_700.jpg우리는 1936년에 고글을 사용해서 바다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1938년 어느 날 아침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프레드릭 뒤마가 100kg의 물고기를 사냥해 나오겠다고 내기를 걸고는 지중해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싸단-3_700.jpg뒤마는 23kg 짜리 구루퍼를 명중시켜 작살대가 구루퍼의 몸을 관통하였으나 물고기가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작살총을 가지고 다시 자맥질하여 끝장을 냈다. 사진은 뒤마가 굴복시킨 구루퍼를 가지고 수면으로 상승하는 장면인데 작살대가 부러져있는 것이 보인다.

싸단-4_700.jpg뒤마는 단 5차례의 자맥질로 총 130kg의 물고기를 잡아 내기에 이겼다.

고글만 쓰고 다이빙했던 시절에 뒤마는 르 브루크에 갔다가 2시간 내에 100kg에 해당하는 물고기를 잡아 올리겠다고 선뜻 내기를 건 적이 있었다. 그는 제한된 시간 내에 다섯 번 밖에 잠수하지 않았고, 그 곳의 수심은 15m에서 20m 내외였다. 뒤마는 한 번 물 속에 들어갈 때마다 아주 큰 물고기와 전투를 벌였고, 물 위로 다시 올라오지 않고 호흡을 참을 수 있는 시간에 대부분의 전투를 끝냈다. 그는 모두 네 마리의 구루퍼(Grouper)와 36kg 나가는 라이케(Liche; 전갱이 종류) 한 마리를 잡아 올렸다. 그가 잡아 올린 물고기 총 중량은 136kg이었다.

우리들의 추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하나는 90kg 정도는 되는 거대한 라이케와 싸웠던 일일 것이다. 처음에 작살을 쏜 사람은 디디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우리는 교대로 다이빙해 들어가서 그 놈과 싸웠다. 우리는 두 번이나 그 놈을 수면까지 끌어올렸지만 이 거대한 녀석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기를 좋아하는지 우리가 지쳐버리면 힘을 얻어서 끝내 도망치고 말았다. 라이케 중에도 왕 중 왕이었던 그 놈을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한창 젊은 때여서 때때로 상식을 벗어난 위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한때 따이예는 혼자서 10월에 카르퀴렌느에 다이빙을 간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옷을 벗어 놓고는 그의 애견 솨카(Soika)군에게 지키게 했다. 수온은 10℃였다. 그는 대형 농어(Bass)를 잡으려고 좇아 다니다가 추위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포기했다. 그가 아무도 없는 해안을 바라보니 그 거리는 수백 미터로 멀었다. 그는 되돌아 오려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은 이미 마비되어 있어 비참한 투쟁이 일어났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바위 위로 올라오기는 했으나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이 몰아쳤다.

이러한 상태로 체온을 빼앗기다가는 도저히 살아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의 애견 울프하운드(Wolfhound)는 우수한 본능을 발휘하여 제 몸으로 주인을 덮고 주인의 얼굴에 더운 입김을 계속 불어 주었다. 따이예가 정신을 차려 보니, 손과 발이 거의 완전히 굳은 상태였다. 그는 간신히 엉금엉금 기어서 피난처로 들어갔다.

우리가 처음으로 잠수 의학에 대하여 연구한 것은 추위에 관해서였다. 물은 공기보다 열을 더 빨리 전도시킨다. 그리고 많은 칼로리를 빼앗아 간다. 해수욕을 할 때 빼앗기는 체온은 대단해서 인체 중심부의 열 생산 기관에 심한 타격을 가한다. 무엇보다도 인체 중심부의 온도는 변화가 없어야 한다. 인체는 추위에 노출되면 인정사정도 없이 후퇴 작전을 개시하는데, 제일 먼저 피부를 추위 속에 내버려 둔 채 퇴각해 버린다. 그 다음에는 피부 밑의 일정한 층을 포기한다. 이것은 표면 층의 혈관을 수축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때 몸 표면에는 소름이 돋는다. 추위가 그 이상으로 체온을 빼앗아 가면 인체는 그 다음으로 두 손과 발을 포기해서라도 인체 속의 가장 중요한 중심부를 보호하려 한다. 인체 중심부의 체온이 떨어져 버리면 생명은 위험에 빠져 버린다.

우리가 알아 낸 결과로는, 해수욕객이 춥다고 해서 담요를 뒤집어 쓰는 것과 같은 일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담요로 몸을 덮는다고 해서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인체 중심부의 열 생산 기관이 인체 표면에 열을 공급하도록 함으로써(표면 쪽으로 더운 혈액을 공급함으로써) 더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심각한 신경반응이 일어난다. 더운 음료나 알코올 음료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인체 표면의 체온을 높이는 데는 별로 쓸모가 없다. 우리는 가끔 과격한 다이빙 후에 브랜디 한 모금을 마시기는 하지만, 그것은 술에 의지해 체온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고 진정제를 복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으려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체온을 회복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뜨거운 목욕탕 물 속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해변에 모닥불을 두 곳에 피운 뒤에 그 사이에 들어가 있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수온이 낮은 물에서 수영할 때 몸에 글리세린을 바르는 것에 관해서도 의외의 사실이 드러났다. 글리세린은 피부에 계속 붙어 있지 않는다. 그것은 물에 씻겨 나가고 피부에 단순한 기름막을 형성할 뿐이다. 오히려 글리세린의 기름 막은 수영을 하는 사람을 보호하기는커녕, 체내의 열 에너지를 조금 더 빨리 소모시키게 만들 뿐이다. 글리세린이 절연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글리세린을 피부 밑에 주사하여서 마치 고래의 그 신비한 지방층처럼 만들 수 있는 경우에만 그러하다.

나는 물 속의 그 냉기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할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여 고무를 입힌 원단을 꿰매거나 약품 등으로 접착도 해보면서 여러 날을 소비했다. 처음 만든 옷을 입어 보니 내가 마치 돈키호테처럼 보였다. 나는 방한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잠수복 속에 약간의 공기를 집어 넣어 부풀어지는 형식을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이 옷을 입고 물 속에 들어가 보니 한 정해진 수심에서만 중성부력이 되었기 때문에 떠오르지 않으려고 또는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이 옷에는 또 다른 하나의 결함이 있었는데 주입한 공기가 자꾸만 발 쪽으로 몰려가서 나는 거꾸로 뒤집힌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우리는 1946년에 수압이 증가되어도 옷의 부피를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잠수복을 개발해 냈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 우리가 찬 물에서 다이빙 할 때 사용하고 있는 콘스탄트 볼륨 드레스(Constant-volume dress.)이다.--※역자註; 현대 Drysuits의 원조이다--. 이너마스크(inner mask)의 밑을 통해서 코로 내쉰 공기를 옷 속으로 들어가게 하면 옷이 팽창되고 머리와 손목 및 발목에는 공기 배출 밸브가 달려 있어서 팽창된 공기를 배출시킬 수 있어 수심에 관계없이 그리고 몸의 자세가 어떻게 되든 다이버는 균형을 취할 수가 있다. 최근에 있었던 ‘폴-에밀 빅토르 북극 탐험’에서 탐험가 마르셀 이샥(Marcel Ichac) 씨는 이 잠수복을 사용해 보았는데, 그린랜드의 빙하 밑에서도 그 성능은 매우 훌륭했다고 말했다.

si-7_crop343.jpg1938년에 손수 만들어 입어본 돈키호테 같은 잠수복. 찬물에서 스킨 다이빙을 할 때 효과를 보았다.
si-8_343.jpg친구인 히말라야 탐험가 마르셀 이삭은 그린란드 빙하 바다 속에서 탐험했을 때 우리가 만든 최신형 “콘스탄트 볼륨” 잠수복을 사용하였다. 그린란드 모험 중 쉬고 있는 마르셀 이삭.

뒤마는 여름(mid-season)에 입을 수 있는 잠수복을 디자인해 냈는데, 이것은 아주 가벼운 발포된  고무 원단으로 만든 저킨(jerkin; 다리와 소매가 없는 상의) 타입이었다. 찬 물 속에서도 이 옷은 20분 정도는 다이버가 원활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지기 우리가 스킨 다이빙을 즐길 때는 무척이나 자만심이 강했다. 우리들은 비록 나이가 들어 다이빙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어린 아이 때부터 자맥질을 시작한 진주잡이들이나 해면 채취 다이버들이 들어가 작업하는 수심도 문제없다고 떵떵거렸다. 그런데, 1939년 튀지니아 앞 바다에 있는 제르바 섬에 갔을 때 나는 나이가 60세인 한 아랍인 해면 다이버가 밧줄을 물 속에 드리우고 엄청난 잠수를 하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확인까지 한 일이 있다. 그 노인은 물 속에서 숨을 쉬는 보조 기구라고는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채 수심 40여 미터나 되는 곳에 다이빙해 들어갔다. 그의 잠수 시간은 2분 30초나 되었다.

이 정도의 수심과 잠수 시간에서 견딜 수 있다는 것은 오직 예외적인 인간에게만 허용된 것이다. 다이버가 물 속으로 하강하면 증가되는 수압에 따라 폐 속에 있는 공기 역시 압력을 받아서 물리적으로 축소된다. 인간의 허파는 신축성 있는 새장(가슴뼈) 속의 고무풍선과 같다. 이 새장은 압력을 받으면 반드시 압축을 받게 되어 있다. 수심 30m에 들어가면 고무 풍선 속에 들어 있는 공기는 수면에 있을 때보다 부피가 1/4로 줄어든다. 더 이상 들어가면 가슴뼈가 더 이상 축소될 수 없는 한계에 이르게 되어 드디어는 부러져서 주저 앉고 만다(역자註; 현대의 프리다이빙 선수들은 1백 수십 미터 씩 들어간다. 프리다이빙은 유럽에서 인기 종목이다).

번역자의 참고자료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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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사진/영국인 프리 다이버 마이클 보드(Michael Board)가 2012년에 기록을 갱신하기 위하여 하강하고 있는 장면. Source/Wikimedia, Author/Sylvain7171. 가운데사진/필리핀 모알보알의 프리다이버 하강 장면. 2012. Source/ Wikimedia, Author/ Andy Moreno. 오른쪽사지/캐나다 사람 윌리엄 윈람(William Winram)의 하강 장면. 2014년에 145m 를 들어갔다. www.youtube.com/watch?v=YtryV9qItsg

흉곽 붕괴 이론을 무효로 만든 유럽의 프리 다이빙 스포츠
숨을 참고 바다 속으로 내려갔을 때 수심이 50미터가 넘으면 폐의 부피가 과도하게 축소되어 가슴뼈가 무너진다는 것은 과학자들의 주장이었었다. 쿠스토 역시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 이 과학적 이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2년 이탈리아의 엔조 마이오르카(Enzo Maiorca)가 51미터 잠수에 성공하여 영웅이 됨으로써 이 과학의 진실은 깨지고 말았다. 이후 프랑스인 쟈크 마욜(Jacques Mayol)과 경쟁하면서 두 사람이 모두 수심 100m 벽까지 허물어버렸다.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대성공을 한 것이 “그랑 불루(Big Blue)”이다. (※ 자크 마욜은 2001년 12월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74세였다. 고독해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최대 기록은 56세에 세운 105m이다).

유럽에서는 “프리 다이빙(free diving)”이라고 하는 기록 경기 스포츠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말 그대로 아무런 호흡 장비 없이 깊이 들어가기를 경쟁하는 스포츠이다. 지금은 내려가는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경기 종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처음에는 그런 것 없이 단순했다. 이 경기는 자맥질로 물고기 사냥을 하는 사람들끼리 누가 오래 깊이 들어가 큰 물고기를 잘 잡나 내기를 하다가 스포츠로 발전한 것이다.

1949년에 항가리 태생 이탈리아 사람인 라이몬도 부처(Raimondo Bucher)가 30m 수심에 도전하겠다고 하며 이벤트를 벌려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이것이 프리 다이빙 기록 경기의 효시가 되었다. 그는 무거운 돌을 들고 물에 뛰어들어 30m에 도달했다가 나왔으며 그 증거로 물속에 있던 양피지 문서가 든 실린더를 가지고 나왔다. 당시에 30m 수심에 도달하는 사람에게 상금 5만 리라를 주겠다는 현상금이 걸려있었는데 그 내용이 적힌 문서가 실린더 안에 있었던 것이다. 부처의 기록은 2년 뒤에 이탈리아 사람 엔니오 팔코(Ennio Falco)에 의해 깨졌다.

이리하여 이탈리아는 프리 다이빙 경기의 메카가 되었다. 부처와 팔코의 기록은 그 뒤 브라질 사람 아메리코 산타렐리(Americo Santarelli) 등 도전자들에 의하여 다시 갱신되었다. 1960년에는 전설이 되다시피 한 두 인물이 나타났는데 1962년에 50m 벽을 깬 엔조 마이오르카와 1966년에 등장한 자크 마욜이다. 그들은 여러 해에 걸쳐 자기 기록을 갱신하며 영웅적인 명성을 유지하였다.

1966년에 등장한 자크 마욜은 중국 상해 태생인 프랑스 사람이었다. 그는 마이오르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기록을 갱신해 나갔는데 수심 100m를 최초로 돌파해 버렸다. 마이오르카는 그 보다 훗날에 이 기록에 도달하였다. 중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자크 마욜은 요가와 명상 기법을 스포츠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의 프리 다이빙 선수들도 요가 수련을 한다.

다른 한편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밥 크로프트(Robert "Bob" Croft)가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미해군의 잠수함 수병 훈련소의 36m 깊이 수조 안에 들어가는 교관이었다. 그는 마이오르카와 마욜 보다 먼저 70m 기록을 세웠다. 그는 설인두 호흡법(Glossopharyngeal Breathing Technique)을 사용했는데 이는 개구리 호흡법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입을 다물고 혀로 공기를 뒤로 밀어서 인두로 보내면 성문이 열릴 때 공기가 강제로 폐로 밀려들어간다. 이는 흡기의 깊이와 폐 용량을 증가시킨다(현대의학에서 물리치료법 중 하나이다)

밥 크로프트의 기록은 생리학자들이 포유동물의 잠수반사 현상(mammalian diving reflex)과 혈액의 집중 현상(blood shift phenomenon)을 알아내는데 기여했다.

밥 크로프트는 일찍 은퇴했지만 마이오르카와 마욜은 나이 50대 때 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20년 이상 라이벌 경쟁을 하였다. 두 사람이 독무대로 경쟁하고 있던 시절에는 프리 다이빙 선수가 많지는 않았었다. 1943년에 쿠스토의 애쿼렁 장비가 발명되자 전문 산업계와 레저 계의 관심이 스쿠바 다이빙 쪽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뤽 베송 감독의 영화 1988년 작품 “글랑 불루(Big Blue)”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다시 옛날에 인기 있었던 스포츠를 되살려 놓았다.

최근의 세계 기록을 찾아보면 2014년 1월에 캐나다 사람 윌리엄 윈람(William Winram)이 145m를 기록했다(Variable Weight 종목). 프리 다이빙은 관중이 물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유를 한국인인 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스포츠의 씨를 심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해면 다이버가 평소에 물속에 내려가 작업하는 수심은 3기압 층 즉 20m 이내이며, 그곳에서는 흉곽이 1/3 밖에는 축소되지 않는다. 우리는 보조 호흡 기구 없이 이 정도 수심에 들어가는 능력은 배웠으며 빨리 하강하기 위해 2~3kg의 중량 벨트를 착용하면 20m의 수심에서 2분 정도를 견딜 수 있다. 일단 수심 8m 이하로 내려가면 흉곽이 압착되는 데 따라 폐 부피가 축소됨으로 상대적으로 중량 벨트는 더 무거워지게 된다. 그래서 해저 바닥에 내려갔을 때 납을 차고 있으면 유사시에 빠른 속도로 상승할 수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뒤마의 스킨 다이빙 기술은 숨대롱을 물고 숨을 쉬면서 얼굴을 물 속에 처박고 떠 있는 것이 기본 자세이다. 그러다가 물속에 무엇인가 나타났을 때, “허리꺽기(stroke of the loin)”라고 알려진 동작을 연출한다(역자註;현대에는 head-first dive라고 한다). 이것은 고래가 수직으로 잠수할 때의 테크닉과 유사한 것이다. 물 위에 떠있는 사람이 그 동작을 취하려면 허리를 꺾어서 머리와 상체를 밑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그 다음 두 다리를 공중으로 치켜 올리면 다이버는 곧장 물 밑으로 빠져 내려간다. 잽싸게 물 밑으로 꽂혀 들어가려면 귀 속의 유스타기오 관(구씨 관)이 평소에 잘 단련되어 있어야(뚫려 있어야) 하고 또 그 관(구멍)이 넓어야 급격히 증가되는 수압에 귀가 적응할 수 있다.

우리도 해면 채취 다이버들이 들어가는 깊은 수심까지 다이빙해 들어가 보았지만, 특별히 만족할 만한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번개같이 들어갔다 돌아 나와야 하는 것만으로는 겨우 해저 환경을 힐끗 쳐다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바다의 신비를 음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호흡 기구를 필요로 한 것은 단순히 깊은 물 속에 들어가 보려 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보다 오래 물 속에 머물러 눈 앞에 전개되는 그 신세계에 몸을 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해군 제독 르 푸리으(Le Prieur)가 독립적인 잠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낸 장비를 실험해 보았다. 이것은 압축 공기가 들어 있는 작은 실린더를 가슴에 걸치고 실린더의 공기가 수경 속으로 계속 들어 오게 한 장비였다. 이 장비는 다이버가 손으로 마개를 돌려서 공기의 분출량을 크게 하거나 적게 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수압에 대응도 하고 공기의 낭비도 막는 방식이었다.

si-6_500.jpg 우리가 애쿼렁을 발명하기 전에는 1933년에 르 푸리으가 발명한 압축 공기통이 있었다. 이 장비는 다이버가 손으로 공기 마개를 조절하여 숨을 쉬면서 얕은 수심을 걸어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공기의 낭비가 심하고 헤엄쳐 다닐 수도 없었다. 천재 기술자인 에밀르 가냥과 나는 최초로 완전 자동식 압축공기 장비인 애쿼렁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르 푸리으 씨의 렁으로 바다 속에서 처음으로 레저다운 맛을 훌륭하게 경험하여 보았다. 그러나 공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단점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밖에는 물 속에 머물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설계한 산소 재순환 방식의 장비(산소 재호흡기)를 내가 근무했던 순양함 서프랭 호의 총공(gun-smith)에게 만들도록 한 적이 있다. 그는 방독면에서 소다회 통과 작은 산소통을 뜯어 내고, 오토바이 타이어에서 튜브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낸 다음 그것들을 가지고 호흡 장비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독립식 장비로서 다이버는 이것을 장착하고 물 속에서 헤엄을 칠 수 있었고, 또 장비에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장치는 내쉰 공기가 소다회를 통과할 때 이산화탄소를 여과시켜 주기 때문에 공기가 정화된다. 산소 호흡기를 장착하고 수심 8m에서 헤엄을 쳐보니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적막감이 감도는 스릴을 맛볼 수 있었다. 꿈 속 같은 세상에 들어가 외로이 적막 속에 있어보니 바다가 나를 용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도취 상태는 너무도 빨리 끝나 버렸다.

산소는 수심 15m까지는 안전하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어서, 나는 서프랭 호의 두 수병에게 내가 산소의 안전 영역에서 다이빙을 할 테니 보트를 타고 감시하고 있으라고 일러놓았다. 나는 아주 환상적인 기분을 품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다의 정글에 안겼다. 나는 인간이나 유인원이 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이따금 두 다리를 모은 다음 돌고래가 유영하듯이 허리를 굽이쳐 내려가면서 그러한 동작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다를 예찬했다. 따이예는 전에 인간도 수면에서 다리와 팔을 사용하지 않고 헤엄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 보인 일이 있었다. 내 몸의 골격 구조와 허리에 두른 납 벨트가 방해가 되기는 했으나 나는 물고기의 특성을 구사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굽이치며 아주 투명한 물 속을 헤엄쳐 나갔다. 30m 전방에 귀족처럼 생긴 도미 떼가 보였다. 은빛과 금빛의 이 물고기들은 아가미 덮개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어 그 모습이 마치 영국 해군 제독같이 보였다. 야금야금 조금씩 헤엄쳐서 아주 가까이 접근했지만 물고기들은 놀라지 않았다. 나의 물고기 흉내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오리발을 힘차게 차면 훨씬 더 빨리 헤엄칠 수 있음이 생각났다. 나는 물고기 한 마리를 계속 좇아가서 그 놈을 굴 속으로 몰아넣고 굴 앞을 막아 섰다. 그 놈은 등지느러미를 치켜 올리면서 불안한 듯 눈알을 뒤룩거렸다. 그러더니 큰 결심이나 한 듯이 나를 향해 과감히 튀어나오면서 몇 센티 미터 간격으로 나를 피해 달아났다. 아래쪽을 보니 강하게 생긴 입과 적대적인 눈초리를 하고 있는 커다란 청색 도미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놈은 대략 수심 15m 정도에 떠 있었다. 내가 밑으로 내려가자 그 놈은 거리를 멀리하며 뒤로 후퇴하였다.

바로 그 순간 내 입술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눈꺼풀도 펄럭거렸다. 허리도 활처럼 뒤로 휘었다. 나는 몸부림치면서 중량 벨트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의식을 잃어 버렸다. 두 명의 수병이 내 몸이 수면에 떠오른 것을 보고 재빨리 나를 보트 위로 건져 올렸다.

나는 여러 주일이나 목과 근육에 고통을 받았다. 나는 내 장비 속에 있었던 소다석회에 불순물이 많아서 그렇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 해 겨울을 서프랭 호에서 지내면서 졸도를 일으키지 않는 더욱 개량된 산소 호흡기를 만들고 있었다. 여름이 되자, 나는 작년에 갔었던 포르께롤레 앞 바다의 같은 장소로 나가서 이 새로운 장비를 가지고 수심 15m에 내려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 빨리 졸도해버렸기 때문에 중량 벨트를 풀어버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익사 직전에 겨우 구출되었다. 이 사건을 끝으로 나는 산소에 대해서는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았다.

1939년 여름, 나는 어떤 만찬회 석상에서 연설을 했다. 이른바 최소한 앞으로 10년 이내에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뒤에 비밀 지령을 받은 나는 내 순양함을 몰고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바로 그 다음날 우리가 오랑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선전 포고를 들었던 것이다. 우리 배 곁에는 영국 해군의 어뢰정대가 늘어서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척이 스크루에 육중한 케이블이 감겨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랑에는 해군 잠수병이 없었다. 나는 스킨 다이빙으로 상황을 조사해 주겠다고 자원해 나섰다. 굵은 와이어가 여섯 번이나 샤프트에 감겨 있었고, 스크루 날개에도 여러 차례나 엉겨 있었다. 그러나 그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의 열의를 꺾지는 못했다.

나는 부하들 중에서 스킨 다이빙을 잘 하는 수병 다섯 명을 모집해서 계속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감겨 있는 케이블을 풀어 냈다. 스크루에 엉킨 케이블을 모두 풀어 내는 데는 몇 시간이나 걸렸다. 그 작업을 모두 마치고 겨우 갑판으로 기어올라 왔을 때 우리는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영국 어뢰정은 소속 함대를 따라 항해를 시작했다. 어뢰정이 우리의 순양함 옆을 지날 때 영국 수병들은 레일에 일렬로 늘어서서 무모한 프랑스인을 향해 만세 삼창으로 예를 표했다. 이 날 나는 물에서의 과로는 미친 짓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러한 작업을 하려면 절대적으로 수중 호흡 기구가 필요했다.

전쟁 말기에 나는 침략군에 관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마르세유 해군 정보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나의 상관은 내 직무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라면 다이빙 실험을 계속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다이빙은 비밀 공작을 감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 펌프에 호스를 연결하여 수면에서 공기를 보내 주는 페르네 잠수 장비를 실험했다. 다이버의 안면을 가로질러가는 호스에는 덕 비크 밸브(duck-beak valve)가 달려있고 공기는 이 밸브를 통해서 중단 없이 분출된다. 다이버는 공기를 마시고 싶으면 마우스 피스로 지나가는 공기를 빨아들인다. 이것은 지금까지 설계된 잠수장비 중에서 가장 간단한 구조였다. 이 장비는 다이버가 수면에 붙잡혀 있어야 하고 너무 불필요하게 공기를 낭비하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그 고약한 산소를 사용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수심 13m에서 페르네 펌프에서 흘러나오는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즐기고 있던 중 폐에 이상한 쇼크를 느꼈다. 공기가 분출될 때 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즉시 기도를 막아서 폐 속에 남아있는 공기를 간직했다. 공기 호스를 잡아 당겨 보았다. 공기 호스가 아무 저항도 없이 끌려 내려왔다. 공기 호스가 수면 가까이에서 끊어져 버렸던 것이다. 나는 보트로 헤엄쳐 올라 갔다. 나중에야 나는 내가 위험에 직면했었던 것을 알았다. 만일 내가 본능적으로 기도를 닫지 않았더라면 파손된 호스 구멍을 통해 압력이 약해진 공기 통로를 따라 물이 급하게 쏟아져 내려와 나의 폐를 요절내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장비를 실험하다가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면 그 장비의 개선책을 연구하느라고 고심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어느 날 호스가 파손되는 것에 대비하는 실험을 하기 위하여 뒤마에게 수심 25m에 들어가 페르네 파이프로 숨을 쉬도록 했다. 나는 파이프를 감시하는 텐더(tender) 역할을 맡고 있다가 호스가 파열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순간 뒤마는 대기압력의 세 배가 넘는 수압 속에 갇혀 버렸다. 나는 호스가 가라앉기 전에 재빨리 거머쥐고는 큰일이 났다 싶어 미친 듯이 감아 올렸다. 내 손에 무겁게 걸려진 무게가 느껴지는가 했더니 드디어 뒤마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붉었고 질식 상태이며 눈알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다. 뒤마 역시 나처럼 제때 기도를 폐쇄했고, 호스를 차례차례 옮겨 쥐면서 상승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장비를 믿고 쓸 수 있을 때까지 개량했다. 그러나 이 펌프식으로는 더 이상 진전이 일어날 수 없었다. 이 장비는 다이버를 개처럼 끈에 묶어 놓는 것이므로 우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장비를 원했다.

우리는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압축공기 폐를 꿈꾸었다. 르 푸리으 식 수동 밸브 대신 고공을 나는 비행사들의 산소 마스크와 같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장비를 원했던 것이다. 나는 내 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술자를 찾기 위하여 파리로 갔다. 내가 에밀르 가냥 (Emile Gagnan)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큰 회사에서 산업용 가스 장비를 취급하는 엔지니어였다. 그에게 나의 구상을 설명한 것은 1942년 12월이었다. 그는 자신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을 중단시키고 “이것과 비슷한 것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는 베클라이트로 만든 한 작은 구조물을 건네 주며 말했다. “이것은 취사용 가스를 자동차 엔진에 공급해 주기 위해 내가 연구해 온 자동 밸브입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에 쓸 가솔린이 없어서 자동차에 목탄을 때거나 자연 가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여러 방면으로 연구되고 있었다. “나의 문제나 당신의 문제나 유사하군요” 하고 에밀르 씨는 말했다.

몇 주일이 걸려 우리는 최초의 자동 레귤레이터를 만들었다. 에밀르와 나는 실험을 하기 위하여 마르느 강의 한적한 벌판으로 달려갔다. 내가 한 길이 넘는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가냥 씨는 제방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레귤레이터는 내가 힘들이지 않아도 충분한 공기를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페르네 장비가 그러했듯이 이것도 배기 파이프 쪽으로 너무 많은 공기가 쓸데없이 흘러나갔다. 나는 물 속에서 거꾸로 서 보았다. 그러자 공기가 나오지 않고 거의 막혀 버려서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몸을 수평으로 하여 헤엄쳐 보았다. 이 때는 완전히 자동적으로 공기 흐름이 조절되었다. 그러나 몸을 수직 방향으로 세울 수 없다면 다이빙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우리는 낙담과 실망을 안고 차를 몰아 돌아오면서 도대체 레귤레이터가 어째서 그러한 변덕을 부렸는지 곰곰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리는 레귤레이터의 새로운 설계 방식을 기적처럼 떠올렸다. 그것은 150기압의 압축 공기를 우선 6기압으로 낮추어 주는 1단계와, 6기압의 압축 공기를 다시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밀도와 부피로 변화시켜 주는 제 2단계의 장치를 혼용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파리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완전한 답을 얻어 냈다.

내가 물 속에서 똑바로 서 있으면 공기가 빠져나가는 통로가 공기가 들어오는 위치보다 높은 쪽에 있었던 것이다. 이 높이의 차이는 약 15cm가 되는데, 이 차이에서 일어나는 수압의 차이가 저절로 공기를 쏟아져 나가게 했던 것이다. 물 속에서 거꾸로 서면 배기 구멍이 반대로 15cm 아래로 위치하게 되기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막혔던 것이다. 수평으로 헤엄칠 때에는 배기 구멍과 취입 구멍이 같은 수압을 받는 위치에 오기 때문에 레귤레이터는 제대로 작동했다. 따라서, 배기 구멍과 취입 구멍을 가능한 한 가까이 위치시키면 압력의 차이가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간단한 결론을 얻고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그와 같은 형식으로 개량한 것을 물 탱크 속에 집어 넣고 실험해 보았더니 완전 무결하게 작동했다.

번역자의 참고자료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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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수중사진; 잭 피시(Jackfish/전갱이류) 무리 속에서 함께 유영하는 인간 물고기. 사진저자/김인영(Kim In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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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다이버. 왼쪽/옷과 헬멧 안의 공간이 커서 납으로 된 무거운 신발과 허리에도 무거운 납을 차야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힘들며 수면에서 내려준 생명 줄에 잡혀있어 자유가 없다. 왼쪽/미해군의 해난구조대 헬멧 다이버. 사진저자/U.S. Navy. wikimedia.org. 우측/구식 헬멧 장비로 해산물을 캐는 현대 한국의 머구리 어부.


제1장 인간 물고기 끝 The End of Chapter 1 Menfish